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 대금 직불 확대 방안’을 4월7일 발표했다.

17개 광역지자체와 20개 공공기관이 합동으로 금년 총 공공발주 공사의 47%에 해당하는 16조원의 공사에 대해 하도급 직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하도급 직불을 통해 중소기업의 가장 절실한 애로사항인 대금 미지급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종합건설업계는 “하도급자에 대한 대금 직불이 건설 관련 법령 체계에 반하고 사적자치의 원칙을 심각히 훼손한다”거나, “당사자가 아닌 발주자가 대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현장 관리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번에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종합건설업계가 법적으로 틀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하도급 직불은 건설분야 중소기업 보호 정책의 상징으로 굳어진 느낌이다.

원도급업체들이 하도급업체들에게 제때 하도급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 ‘갑질’을 해 왔던 세월이 길었던 만큼, 국민들과 정부에 그 이미지가 강렬하게 새겨진 것이 원인이다. 따라서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다는 정부의 명분 앞에 ‘사적자치’나 ‘현장 관리 효율성’은 설득력을 잃었다.

우리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직불제의 취지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직불제도가 민간끼리의 거래에 정부가 개입하는 다소 과격한 제도지만, 하도급업체가 당하는 불이익을 실질적으로 차단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라는 것을 시장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직불제를 포함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하도급업체 보호책이 문자 그대로 ‘하도급업체 보호책’에 국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지금 건설시장에서는 정부로부터 공사대금을 직불을 받은 하도급업체가 건설근로자 노임이나 장비대금 등을 체불하고 잠적하거나 도산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렇게 체불된 노임과 장비대금을 발주처들은 대부분 원도급사에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 역시 공정한 거래가 아니다.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현행 하도급 직불제도의 연장선에서 이 문제도 제도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조달청이나 서울시가 운영중인 전자대금직불시스템에도 건설근로자 노임이나 장비대금까지 발주자가 직불 할 수 있는 기술적인 장치는 마련돼 있다.

그런데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번 ‘하도급 대금 직불 확대 방안’에서 이를 해결해 달라는 종합건설업계와 건설노조의 요구는 외면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주요 기능중의 하나는 ‘중소기업의 경쟁기반 확보’다. 공정위가 스스로 밝힌 설립 목적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건설산업에서는 하도급업체만이 중소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1만여개 종합건설업체 가운데 1만개가 중소기업이다.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정부의 의지다.